何かお学ぶ理由について
시사 모의고사 JLPT N2」 p.130
배우는 것은 중요한 것이며, 배운 만큼 인생과 사회가 보이게 된다. 이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알고는 있지만, 나 자신은 무엇을 위해 공부하고 있느냐고 나의 경우로서 생각해보면, 무언가 확실하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어릴 적, "계산기가 있는데 왜 산수를 배워야하나요?", "외국에 나갈 생각이 없는데 왜 외국어가 필요한가요?"라고 선생님에게 질문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만족스러운 답변은 얻지 못했을 것이다. "공부는 학생의 본분이니까",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와 같은 답을 들은 학생은 실망해버리고 만다.
배우는 목적에 대해서 가장 많이 듣게되는 것은,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라는 것이다. 이 것은 어떤 공부에도 적용되므로, 납득이 간다. 하지만, 뭔가가 부족하다. 아무래도 만족할 수 없다. 그것은, 하기 싫은 것을 하기 위한 이유를 억지로 찾으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확실히, 어떤 것을 함에 있어서도 이유는 중요하다. 기껏 공부한 것을 나쁜 곳에 이용해버리면 의미가 없다. 목적을 잃어버리면 안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A가 필요한 것은 B를 위해서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A의 본질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B가 없으면 A의 존재 의미도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살아가는 데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은, 생활을 공부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는 전혀 관계 없이, 스스로의 외부에 이유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완벽히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면, 자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새로운 질문을 늘릴 뿐이다. 도움이 되는가 아닌가를 기준 삼는다면, 언제나 이해(利害)만을 생각하고 공부해야만 한다. 이래서는 공부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질문을 바꿔보자. 사람은 어째서 여행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하는가? 그 것은, 감동하고 싶어서가 아닌가? 누구라도 무엇을 하고 있을 때는 감동이나 기쁨을 찾기 마련이다. 같은 방식으로 공부도, 역시 '감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옛날 어느 과학자는 어떤 법칙을 목욕탕에서 발견하고는, "유레카!"라고 외치며 알몸인 채로 뛰어다녔다고 하지 않는가. 조금 과장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알았다는 기쁨, 발견한 기쁨은 그만큼 어마어마한 것이다. 공부 그 자체에 감동하고 살아 있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것. 이것이야 말로 인생의 귀중한 '배움'이 아니겠는가.